미술계의 중심 작가들

낸 골딘의 드래그 퀸 : 어떤 예술을 선호하는가?

elias park. 2018. 4. 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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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을 선호하는가?


사회적 계약을 바꾸려고 안간힘 쓰다가 결국 실패하는 예술? 아니면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하다가 성공하는 예술? - 로버트 휴즈


"사회적 계약을 바꾸다" 틀과 강박에 박혀있는 우리 삶의 깊게 파여있는 틀을 흔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충격을 주는 사건이나 생각들이 있어야 조금이나마 흔들린다. 우리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바로 예술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아픈 부분을 일깨우고 찌르는 예술은 누군가에게는 깊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수면위로 흔들기에는 불편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을 바꾸는 예술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작업을 진행하다보면 분명 세상을 바꾸고 있지만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위치에서 그저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한 예술가를 예로 사회적 계약을 바꾸는,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름의 독특한 즐거움을 줬던 낸 골딘을 이야기하고 싶다.



낸 골딘의 작업은 누군가의 마음을 일깨우거나 즐거움과 기쁨을 추구하는 작업도 아니였다. 그저 존재를 보여주는 그 자체를 인정하는 작업이었다.  낸골딘은 1980년대 폭력적인 관계들과 약물의 남용 등 사회적으로 비주류였던 사람들의 사진들을 다루었다. 직접 사회의 비주류인 사람들에서의 섞이려고 노력한게 아니였고, 낸 골딘이 여성들을 강압하고 때리는 남편을 두고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살던, 사람들을 그저 담아냈을 뿐이였다. 한 예로 낸 골딘은 1980년대 뉴욕 클럽에서 활동하던 드래그 퀸( 여성으로 분장한 남성들 ) 공연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들을 단순히 신기하고 독특한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아닌,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를 원했다. 그저 존재 자체를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였다.



낸 골딘에게 카메라로 누군가를 담아내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사회적인 어느것을 보이는 것 자체였다. 잘못되고 잘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보여주는 것. 그들을 그저 사회의 일부로 보여지고 싶었던 것을 담았던 낸 골딘은 세상의 비주류였던 자신 조차도 사회의 일부로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예술을 선호하는가, 사회적 계약을 바꾸려다 실패한 예술? 즐거움과 기쁨을 추구하다 성공한 예술?


둘 다 좋다. 내가 예술을 한다면 둘 다 선택하겠다. 즐거움과 기쁨을 추구하는 예술은 표현 방법에 있을 뿐이고, 사회적 계약을 바꾸려는 예술은 표현의 본질에 있을 뿐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고있는 삶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비주류인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도태된 사람들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분명 있다.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 그것을 보고 그것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을 일깨우게 된다면. 나아가 사회적인 문제, 사회적 계약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여지게 되고, 개개인들이 깨닫는 예술 자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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